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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암환자의 품격 있는 저녁

기사승인 2017.04.20  12: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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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있는 삶'.

아주 오래전 들어본 슬로건이다.

가족들과 도란도란 저녁 식탁에 앉아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먹고, 석양이 지는 하늘을 소파에 앉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 시간들. 집 가까이 산책길을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한 바퀴 휘 돌아보는 저녁 시간들.

암환자들에게, 특히 척추에 전이되어 움직임 자체가 통증을 일으키는 환자들에게도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할까.

 

난 재활의학과 의사다. 오늘도 환자를 만난다. 척추에 전이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방사선 치료를 계획 중인 환자들, 돌아눕는 것 자체가 아프고 누워있다가 일어나 앉는 동작이 아파 누워 지내는 환자들. 아파서 누워 지내다가 힘도 빠지고 근육도 빠져 걷는 게 힘든 환자들···.

방금 항암치료 중인 폐암 환자분을 협진 의뢰를 받아 찾아뵈었다. 척추 전이로 움직일 때마다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분이었다. 그분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앉아 있거나 움직이려면 척추 보조기가 꼭 필요하다. 보조기를 써서 통증이 줄어들면 화장실에 걸어서 갈 수 있다. 간단한 체력을 키우기 위한 운동도 할 수 있게 된다. 앉아서 식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척추 보조기 비용은 본인 부담이다. 장애 진단을 받으면 보조기를 지원받을 수 있지만 암 환자는 해당 사항이 없다. 장애 등록이 안 된 상태에서 처방된 보조기는 값이 꽤 비싸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돈을 치료 비용으로 부담하여 여유가 없는 말기암 환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환자들의 동작을 살펴보면, 누웠다 앉는 동작이 기계적 통증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흉추로 전이된 경우 가능한 전신을 통나무처럼 굴려서 전이된 부위에 하중이 가하지 않도록 주의하지만, 허리 부위에 전이가 된 경우에는 이도 저도 힘들다.

올해 초 일본 병원에 견학할 기회가 있어서 담당 의사에게 물어보았다. 척추 전이가 있는 환자들이 집에 돌아가 이동 동작 훈련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돌아온 답은 간단하였다.

일본에는 암환자가 전동침대 대여를 신청할 수 있다고 한다. 일어나는 데 무리가 없도록 전동 침대 대여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한다.

얼마 뒤 척추 전이가 되었지만, 다행히 척수 신경까지는 전이되지 않아 근력을 유지할 수 있는 40대 환자를 만나게 되었다. 전동 침대를 대여해 집에서 사용하면 좀 더 편하게 앉고 서기가 가능해져 보행이 가능할 수 있는 환자였다. 그 환자를 위해 전동 침대를 대여해주고 싶었지만 어렵다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나이가 노인에 해당하지 않고, 파킨슨병 등 노령화로 인한 진단이 없고 암의 척추전이가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아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가 원하는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품격을 갖춘 임종은 상상할 수 없다. 우리가 꿈꾸는 마지막은 하루를 마감하며 여유 있게 앉아 석양의 노을을 바라보며 가까운 동네 한 바퀴를 천천히 거닐 수 있는 저녁이 있는 삶이 아니었던가. 그들에게 이러한 삶의 마지막은 불가능한 것일까?

불가능하지 않다. 우리나라 암 환자 중 2008년~2012년 동안 전이성 척추종양을 한 번이라도 진단받은 20세 이상 100세 미만의 환자는 총 2만8829명이다. 2008년~2012년 동안 전이성 척추종양을 한 번이라도 진단받은 20세 이상 100세 미만의 신환자는 총 1만3288명이다. 연도별 전이성 척추종양 신환자 수는 약 3000명에 달한다.

이들에게 척추보조기 20만 원 정도의 비용을 보조한다고 가정하면 일 년에 약 6억 정도의 예산이 필요하다. 전동 침대 대여 비용 월 10만 원의 50%를 지원하면, 척추 전이 후 생존 기간 6개월로 가정할 때 약 9억의 비용이 든다.

말기암 환자의 품격있는 저녁을 위해 10억 원 정도는 투자할 수 있지 않을까?

척추전이가 있는 암환자들이 척추 보조기라도 마음껏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전동 침대라도 비용 부담 없이 대여해 집에서 편안히 앉아 저녁을 드셨으면 좋겠다.

양은주 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저작권자 © 의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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