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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아버지

기사승인 2017.05.15  11: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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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찬경 원장(인천 부평·밝은눈안과의원)

▲ 정찬경 원장(인천 부평·밝은눈안과의원)

"아빠는 숙제가 없어서 좋겠다."
아들이 쓰러지듯 책상 옆 침대에 누우며 볼멘소리를 한다.
대답할 말을 얼른 찾기 힘들다.
"야! 아빠도 밖에서 일하느라 힘들어. 너 그거 알아?"
"그래도 숙제는 없잖아."
그러고 보니 최근 수년간 숙제를 해본 적이 없긴 하다.
"그래…. 미안하다. 많이 힘드니?"
"아빠가 미안할 건 없고. 휴우…."
'이 녀석이 병 주고 약 주네.'
시무룩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는 아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아들을 바라보다 문득 어린 시절의 나와 아버지가 떠오른다. 엄하고 무서웠던 모습과 인자하고 다정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진다. 무언가를 잘못해 야단을 칠 때면 정말 무서워 오금이 저렸다. 그러나 나를 사랑해 주신 기억도 많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와 아버지가 근무하시던 학교는 서로 가까운 편이어서 자전거에 나를 태워 함께 등교를 했다. 뒷자리에 앉아 아버지의 따스한 몸을 끌어안은 채 평화로운 시골 들녘의 풍경을 바라보곤 했다. 아버지는 노래를 자주 흥얼거렸는데 '보리밭' 같은 가곡을 특히 좋아하셨다.

퇴근해 오실 때면 빵이나 다른 간식을 사오시곤 했는데 우리 삼남매가 '와' 하고 달려들어 먹으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흐뭇하게 웃고 계셨다.

때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면 '건강이 더 중요하다'며 불을 꺼버리곤 했는데 그럴 때면 '공부하는 애한테 왜 그러냐'는 어머니와 가벼운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난 두 분 사이에서 난처해하며 이부자리에 들어갔다. 이불 속은 따스했다. 그런 따스한 날들이 계속되리라 믿었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1주 쯤 후였다. 음악수업 도중 누군가 나를 불러내어 교무실로 데려갔다. 교무실 입구에 서서 기다리고 있던 담임선생님께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찬경아…" 하고 나서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나 역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지막한 소리로 말씀하시는데 선생님의 얼굴을 올려다보니 눈가가 촉촉해 보였다. 문득 새벽까지 심하게 아팠던 어머니가 떠올랐다.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치며 나도 모르게 울음이 나오려 했다. 그러나 그 울음을 꾹 참으며 속으로 무언가를 부인하고 있었다.

"얼른 집에 가보거라…."

어깨를 감싸듯 툭툭 쳐주시곤 나를 돌려 세운 후 부드럽게 떠밀었다. 발에 아무 감각이 없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집으로 걸었다. 마침내 활짝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섰을 때 그토록 부인하고 싶었던 일은 현실이 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서있었고 싸늘하게 식은 어머니의 시신은 병풍 뒤에 누워있었다. 눈앞의 일들이 꿈속에서 일어난 듯해 믿기지 않았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주저앉아 우시는 아버지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평소에 산처럼 의연하던 아버지는 아내의 죽음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당시 아버지의 나이를 셈해 보니 지금의 나보다 몇 살이 어리다. 어찌 보면 청년의 티를 갓 벗은 중년의 초입이다. 그 때의 아버지가 측은하다.

이틀 후 어머니의 영정을 들고 집 앞 골목을 엉엉 울면서 걸어 나왔다.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잠시 나를 붙들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는 거다. 어머니는 조금 빨리 그 때가 온 것뿐이니 이제 그만 울어라."

참 냉정한 말씀이었다. 야속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말을 들은 후 슬픔과 충격으로 흐릿해진 정신이 조금 맑아지는 걸 느꼈다.

아버지도 어머니를 잃어버린 어린 아들을 보며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빨리 그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을 원했던 걸까. 아버지란 원래 그런 사람인지 모른다. 아들을 불쌍히 여기면서도, 어떤 어려움도 너끈히 이겨내는 강한 남자가 되기를 바라는 모순된 마음을 지녔다.

숙제에 지친 아들이 어찌됐나 궁금해 방문을 살짝 열어본다. 책상에 앉아 골똘히 책을 보는 아들의 옆모습이 사랑스럽다. 아버지도 어린 시절의 나를 이렇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들고 있던 전화에서 아버지 번호를 찾는다.

"아버지! 별일 없으시죠?"
"여긴 모두 잘 있으니 걱정 말고 애들이랑 준석엄마랑 건강히 잘 지내라. 난 그게 제일 좋다."

예전보다 컬컬해진 목소리에서 사랑의 마음이 진하게 배어난다.
아버지의 사랑이 언제나 더 깊다. 

Doctorsnews admin@doctorsnews.co.kr

<저작권자 © 의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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