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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개발국 문화에 맞는 보건의료 원조

기사승인 2017.06.19  11: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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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계형 교수(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공공보건의료사업단)

▲ 김계형 교수(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공공보건의료사업단)

남태평양 도서국가 14개국의 비만 유병률은 미국이나 유럽을 제치고 독보적으로 높다. 특히 나우루·통가·사모아 등은 BMI 30kg/㎡ 기준 비만 유병률이 전체 인구의 75%를 넘는 곳이다. 일견 비만·고혈압·당뇨 등의 성인병은 선진국병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남태평양 국가들의 주된 사망의 원인은 개발도상국임에도 심뇌혈관 질환과 암성 질환이다.

6년 전 나는 피지의 수도 수바(Suva)에 홀로 도착했다. 수바는 밤바다가 아주 고즈넉한 항구 도시로 밤에는 파도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사시사철 비가 내리는 곳이다. 나는 한-남태평양 도서국가협력사업으로 이뤄지는 만성질환관리 교육 사업을 3년 동안, 해마다 두 달간 운영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현지 피지 국립의대와 교육프로그램 협의 당시 한국과 피지·호주 교수들을 초빙해 JNC·ADA·NCEP 등의 당시 가이드라인을 보급하고 지역사회 어젠다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곧 그 목표를 버리고 머리를 싸맬 정도로 고민하게 됐다.

그 지역 만성질환 관리의 가장 큰 장애물은 비만을 교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점이었다. 우선, 비만에 대한 인식이 문화적으로 전혀 달랐는데, 그들은 BMI 30∼35kg/㎡ 정도의 체형이 이성에게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연수생인 의사·간호사들도 대부분 비만 체중과 고혈압·당뇨 등을 갖고 있었는데, 고혈압·당뇨의 합병증이 주제인 강좌에서는 풀이 죽어 매우 우울해하곤 했다.

남태평양 국가 당뇨 환자들의 가장 흔한 입원 상병은 하지 절단술이며 외과병동의 가장 흔한 수술의 하나였는데, 주로 맨발로 다니기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는 당뇨 환자의 30프로까지도 절단이 이뤄지곤 했다.

그들이 여러 가이드라인을 숙지하고 각자의 섬으로 돌아가더라도 진료할 수 있는 여건이 매우 열악했다. 고혈압 약은 thiazide 이뇨제밖에 없는 곳이 많았으며, 당뇨 약은 아마릴과 메포민·인슐린 주사가 전부였다. 고지혈증 약은 아예 없는 곳이 많았다.

그나마 여러 선진국의 약품 보급선이 끊기면 있던 약도 동나곤 해서 환자의 혈당·혈압의 적절한 조절은 거의 행운에 가까운 일이었다. 여러 가지 신약이 포함된 세련된 가이드라인과 최신 지견은 일부 연수생에게 오히려 좌절감을 주었다.

그럼에도 남태평양 지역의 의사·간호사들은 낙담하지 않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농담을 즐기곤 했다. 강의를 통해 여러 가지 예방 프로그램이 고혈압 약이나 metformin의 약효와 거의 동등할 정도로 효과를 보임을 알게 됐는데, 마침 주 피지 한국 대사가 연설 중에 한국의 국민체조를 소개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

이후 연수생들은 의견을 모아 여러 유튜브 동영상을 검색해 줌바댄스를 검색했고 지역주민에게 실행하기에 앞서 본인들이 먼저 실천하기로 결정한 후 6주 동안 매일 줌바댄스운동회를 흥겹게 운영했다.

외국의 비슷한 사례를 들어보자면, 캐나다의 'Healthy Doc = Healthy Patient project'가 있는데, 의사의 건강개선이 환자 결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선례이다.

줌바 프로그램은 부족의 축제 문화를 즐기는 남태평양의 문화와 생각보다 매우 잘 어울려서 1년 후 추적 결과를 보니 대부분의 지역사회에 해당 운동프로그램을 설치했다. 그 외에도 주민 인식 개선, 금연 정책, 영양 프로그램 개발 등 여러 기관에 제안서를 제출했고, 기타 진료물품이나 약품 지원 방안을 스스로 마련하고 있었다.

동남아시아에서도 비슷한 고민의 경험이 있다. 불교 국가인 일부 미얀마·라오스 등의 동남아시아 국가는 말라리아 유행 지역임에도 주민들은 모기에 대한 살생을 꺼린다.

이는 모기만이 아니라 바퀴벌레 등 다른 해충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있다. 결국 주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안은 모기장 밖에 없었다. 라오스 지역에서는 심지어 말라리아 진단 후에도 약물 치료를 거부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다른 국가의 문화나 관습이 여러가지 국제협력 사업에서는 미처 생각치 못한 장애요인으로 다가올 때가 있고, 애써 준비한 프로그램이 해당 국가의 맥락에 맞지 않을 때가 있다.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짧은 기간 안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합의를 도출할 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려우나, 어려울수록 돌아가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을 때가 있다. 해당 국가의 좋은 사람들과 합의를 도출하고, 맥락에 맞게 프로그램을 수정하는 일 또한 최선을 다해서 이뤄져야 할 일인 듯 하다. 

Doctorsnews admin@doctorsnews.co.kr

<저작권자 © 의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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