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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피카소 치바이스 대규모 첫 내한전"

기사승인 2017.09.01  11:3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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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바이스齊白石 - 목공(木工)에서 거장(巨匠)까지>전 10월 8일까지 예술의전당…그림·서예·전각 등 총 133점 선보여

▲ 물소, 족자, 종이에 먹, 31cm×42cm, 중국호남성박물관.

한중수교 25주년을 맞아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중국의 피카소라 불리는 치바이스(Qi Baishi 齊白石, 1864 ~1957)의 국내 첫 전시 <치바이스齊白石한국전>이 10월 8일까지 대규모 선보인다.

<치바이스齊白石 - 목공(木工)에서 거장(巨匠)까지>라는 컨셉트로 1·2부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1부에서 치바이스의 그림·서예·전각 50점 및 생애유물 83점등 총 133점을, 2부에서는 한중 현대 서화미술작가가 치바이스를 오마쥬한 작품 30여 점을 선보인다.

 

▲ 치바이스의 본명은 치후앙이고 바이스는 그의 필명이다. 그림 주제는 동물·풍경·인물·채소 등을 즐겨 그렸고, 말년에는 쥐·새우·새 등을 많이 그렸다.

동양의 피카소로 통하는 치바이스…
보험가액 1500억원에 이르는 작품 전시

치바이스는 중국의 피카소로 불린다. 그의 작품 '송백고립도(松柏高立圖)·전서사언련(篆書四言聯)'은 낙찰가액 714억원을 기록할 만큼 세계 미술시장에서 큰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다.

이번 전시 역시 보험가액만 약 1500억원에 이른다. 이번 전시에는 <제백석인물도축(齊白石人物圖軸)>·<제백석수우도축(齊白石水牛圖軸)>·<제백석양류도축(齊白石楊柳圖軸)>·<제백석산수도축(齊白石山水圖軸)>·<제백석남과도축(齊白石南瓜圖軸)> 등 호남성 박물관 소장 치바이스 그림과 서예 전각 50점, 치바이스 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생애유물 83점 등 133점이 선보인다.

중국의 피카소라 불릴 만큼 20세기 동아시아 미술의 최고봉으로 잘 알려진 치바이스….

그는 장대천(張大千)과 함께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서화가인데 대중적 인기나 예술적 경지에서 사실상 독보적인 위치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 경매업체 가디언이 베이징에서 주최한 '2011 춘계경매회'에 치바이스의 '송백고립도·전서사언련'이 714억 5000만원에 낙찰될 정도로 그의 작품은 세계미술시장의 블루칩이다. 그해 피카소, 클림트 작품을 제치고 최고가 미술품 경매가를 기록해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송백고립도는 치바이스가 장개석에게 선물로 준 그림이다. 하지만 중국 회화 최고가 기록을 경신한 가로 1m×세로 2.66m의 이 작품은 위작 시비에 휘말려 낙찰자가 경매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어 또 한 번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화조사병' 작품 또한 154억 4800만원에 팔렸으며 선전에서 열린 경매에서도 '군룡입해도'가 약 2백억원에 거래되는 등 그의 그림은 최고의 인기를 얻는다.

 

▲ 치바이스는 특히 새우 그림으로 유명하다(새우, 1948, 종이에 먹, 99cm×34cm, 중국호남성박물관).

목장(木匠)에서 거장(巨匠)으로…
독학으로 기적을 이루며 존경받는 거장으로

치바이스는 유년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드라마틱 한 일생을 산다. 1864년 중국 후난성 샹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치바이스는 어린나이부터 찢어지는 가난에 시달렸다. "가난한 집 아이가 잘 자라 어른이 돼 세상에서 출세하기란 진정 하늘에 오르는 것만큼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라고 77세에 고백할 정도였다고 한다.

농사일을 돕고 소를 치는 등 가사를 돕던 어린 치바이스…. 그는 14살때 부터 목공일을 배우고 일감이 없는 밤이면 글과 그림을 익혔다. 27살이 돼서야 스승을 만나 시작(詩作)지도를 받게 됐고 , 30살 이후에야 그림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치바이스는 시(詩)·서(書)·화(畵) 및 인장 조각 등을 독학으로 익혔던 셈이다.

40대에 들어선 치바이스는 자연으로부터 영감(靈感)을 구하기 위해 전국의 경승지를 다섯차례에 걸쳐 두루 여행한다. 이 때 치바이스는 우창슈오(吳昌碩)와 같은 상해화파 인물들과 베이징의 첸시젱(陳師曾)과 교분을 쌓는다.

한편, 인물 중심의 세필화를 배우면서 시작된 그의 그림은 '사물의 겉모습만을 모사하는 데 그치지 않겠다'·'전대의 대가들의 그림을 세심하게 따라하는 것은 죽은 공부다'라며 외형모사나 답습을 철저히 경계했다.

이러한 치바이스는 97세에 삶을 마감했는데 스스로 80살이 넘어서야 그림다운 그림이 나왔다고 할 정도로 죽는 날 까지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다고 한다.

 

천진난만한 아름다움, 평범에서 비범으로

치바이스는 일상생활에서 발견되는 지극히 평범한 소재와 함께 일도법(一刀法)과 같은 독자적인 기법으로 작품을 형상화했다. 일도법이라는 전각도법(篆刻刀法)은 한 칼로 침착통쾌(沈着痛快)하게 글씨와 그림까지 일필휘지 구사해 내는 것을 말한다.

이와함께 그의 그림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색과 필획이다. '치바이스 칼라'라고 불릴정도로 강렬한 원색의 대비, 장검을 휘두르듯 단숨에 죽죽 그어 내리는 직필(直筆)과 디테일한 묘사, 허허실실한 공간경영이 바로 치바이스 작품의 독창성이라는 평단의 평이다. 이런 기법들은 그의 담력과 패기에 근원한다고 한다. 

청조 봉건사회가 망하고, 서구문명과 민주·공산·사회주의 득세와 일본제국주의 침략으로 격변하는 20세기 중국사회를 관통하면서 근 한 세기를 살았던 예술가 치바이스….

낡은 봉건주의 관습에 얽매이거나 시세에 영합하지 않고, 철저하게 실존을 직시하며 격변하는 세태에 풍자와 우화·해학으로 필묵을 비틀고 녹여내 외길로 일관했던 사상가이자 예술가 치바이스…. 그의 예술혼을 확인하는 전시가 될듯하다.

▲ 송백고립도·전서사언련, 1946, 1m×2.66m.
'2011 춘계경매회'에서 714억 5000여만원이라는 중국 회화 최고가 기록을 경신한 가로 1m, 세로 2.66m의 '송백고립도·전서사언련'. 중국 미술시장의 가장 큰 문제의 하나인 위작 시비에 휘말려 낙찰자가 경매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어서 또 한 번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킨 그림이다.

 

윤세호 기자 seho3@doctor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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